오늘을 걷다

정철이가 남긴 약속 본문

■ [ 일상을 걷다 ]/깨어있기

정철이가 남긴 약속

낮은 바다 2013. 7. 5. 12:01


전화를 받은 것은 말년휴가 복귀 이틀 전이었다. 그 해 무더운 여름, 나는 정동의 어느 벤치에 앉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동이 울렸다. 혁재였다. 평소같이 까불대는 목소리를 기대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전혀 다르다. 순간 화면에 뜬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이 놈 맞나? 뭐냐 너, 하며 나는 웃었는데 녀석은 여전히 마른 목소리였다. 순간 안 좋은 느낌이 있었다. 잠깐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혁재가 머뭇대며 한 친구의 이름을 말했다. 


정철이가


순간 떠들썩한 거리의 소음과 행인들의 바쁜 발걸음이 의식 속에서 흐릿해졌다. 한동안 우리는 옅은 핸드폰의 잡음만을 들으며 침묵을 지켰다. 정철이가... 어쨌다구? 녀석에 대해 근래 들어왔던 몇 가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황망한 이야기. 너무 좋아하던 여자 동기한테 버림받았다는 이야기. 뜬금없이 친하지도 않은 선배를 찾아가 방송국 사업을 의논했다는 이야기. 여러가지 이야기들 속에서도 문득, 오빠, 정철이가 좀 이상해졌어요. 하던 정철이 동기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생각났고. 입대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어딘지 모르게 다른 사람 같았던 어색한 몸짓과 행동들도 떠올랐다. 그런 것들이 그 애의 얼굴과 흐릿하게 겹쳐졌다. 그리고...


정철이가... 죽었대. 



1.


정철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후배 중 하나였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십 년 전. 내가 대학 2학년이던 해 가을에 정철이를 처음 만났다. 정철이에 대해 무엇을 자랑해야 할까. 할 말이 많다. 무엇보다 녀석은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정철이는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멜로디를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정철이가 있으면 우리는 굳이 무거운 악보책을 들고 가지 않았다. 기타 연주도 어찌나 맛깔나게 잘 하는지, 기타깨나 친다는 선배들이 있어도 우리는 늘 정철이 손에 기타를 들려주곤 했다.



부총회 장기자랑에서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정철이. 2005년 초.



사람도 참 좋았다. 녀석은 고집이란 게 없었다. 해사하게 잘 생긴 얼굴로 늘 엷게 웃으며 사람들 말을 들어줬다. 나 같은 운동권 선배가 집회 나가자는 둥, 술 마셔야 하니까 수업 들어가지 말라는 둥 괴롭혀도 아이 형~ 저 오늘은 안되요~ 하며 웃으며 손사래 치다가 자꾸 잡으면 잡히는 그런 녀석이었다. 별명을 음유시인이라고 붙여줄 만큼 목소리도 좋아서 교내 방송 아나운서를 했고, 눌변이었지만 종종 개그를 쳐서 선후배들 빵빵 웃겨주는 그런 녀석이었다. 


정철이는 나를 많이 따랐고 나도 정철이와 자주 어울렸다. 쌓은 추억들도 참 많은데, 교내방송 한 학기가 끝나면 방송팀끼리 놀러가 녀석이 멋지게 끓인 마늘라면을 먹으며 감탄하기도 했고, 예술적 자질이 다분한 녀석을 데리고서는 한 여름 빡센 집회들도 많이 나갔다. 종방식때는 같이 팀을 짜서 촌극을 만들기도 했는데, 녀석과 나는 정교한 코믹 연기로 사람들을 웃겼다. (이건 우리 둘만의 생각인가.)




정철이와 같이 부산 여행을 갔던 2008년 겨울.



그 녀석의 눈빛에는 믿음이 있었다. 눈빛만 가만히 바라봐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는 순간이 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쌍꺼풀진 눈이 껌뻑거리며 나를 볼 때, 나는 정철이 마음 안에 나를 생각하는 따뜻한 애정을 느꼈다. 당신 믿는다고, 당신이 하는 말, 당신이 살려는 삶, 그거 멋있고 좋은 거 같다고. 은근히 건네는 말들이 녀석의 표정으로부터 들렸다. 나는 그런 말들을 고맙게 들었다. 아마 그때보다 지금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됐다면 거기에는 분명 정철이의 몫이 들어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2.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밤이었다. 깜깜한 길에 차를 몰아 그 곳으로 향했다. 산본의 어느 장례식장.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동기들과 같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 코너를 돌았고, 그 복도 끝에 있다는 정철이의 빈소로 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나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씩... 정철이와의 약속 장소도, 우리가 몇 년을 함께 보낸 우리의 동아리방도 아닌, 정철이의 영정이 놓인 빈소라는 곳을 향해 다가갈수록,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정철이의 그 죽음이 내 의식을 향해 육박해 오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나는 몇 미터를 앞두고 걸음을 멈췄다. 같이 걷던 두 친구가 나를 앞서 걸어가 정철이의 영정이 놓인 빈소를 향해 돌아서는 모습이 아득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애들이 나를 돌아볼 때쯤, 나도 모르게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빈소 앞에 섰다. 그 순간의 풍경... 철이의 어머님과 앳된 동생이 상복을 입고 넋이 나간듯 앉아있고, 활짝 웃는 녀석이 한 가운데 액자로만 존재하던 적막한 순간. 정철아, 네가 정말 죽었구나. 갑작스레 터져나오는 울음에 숨이 막혔다. 차마 신발을 벗고 올라가 정철이를 향해 다가설 수가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곤 자리에 서서 미친사람처럼 한참을 울었다.



3. 


정철이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겨울 끝 무렵에 한 후배가 군대로 편지를 보내왔다. 정철이와 친했던 또 다른 후배의 편지였다. 큰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들 사이에는 선배들에 대한 원망이 묻어있었다. 장례식장에 가려는 데 문득 그 편지가 생각났다. 많이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 편지를 다시 찾아 읽었다. 





... 형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군대 다녀온 사이 무언가 변화를 느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고 그냥그냥 넘겼는데 실제로 당사자를 만나보니 생각보다 심각하더군요. 정말 지난 시간 무슨 일이 있었나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있던 누구 한 사람을 대면했습니다. 중간 과정을 모르는 저로서는 당황도 있었지만 동정도 있었습니다. 설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를 넣었더니 굉장히 감격하더군요. 그 뒤 저만 자꾸 찾았습니다. 불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솔직히 귀찮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만나서 얘기해보았을 때 다른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다. 연락은 오지도 않고 심지어 해도 무시당한다. 처음엔 사실인가 싶었습니다. 내가 아는 방송반인가. 그리고 선배님들인가 싶었죠. 그리고 그 분이 과장했을 것이라고도 의심했습니다.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 기억 속 잊히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날 그 분이 제게 앞으로 반말하고 이름을 부르라더군요. 저는 싫다고, 왜 그러냐니깐 하는 말이 "나는 후배 필요 없어. 친구가 필요해."



빈소에 있던 정철이 동생도 비슷한 말을 했다. 철이가 많이 외로워했다고... 자기가 일찍 결혼한 탓에 많이 챙겨주지도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고, 작은 체구의 여자는 그 말을 하며 퉁퉁 부은 눈으로 자꾸 울었다. 사실이었다. 정철이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소외감에 시달리다가, 불과 스물일곱 나이에 세상과의 연을 끊은 것이다.



4.


그 애와 함께했던 대학 생활 내내 내가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아마 한 가지일 것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일이 아무리 바빠도, 더디 가더라도 사람 생각하자고. 세상을 바꿀려고 해도 사람의 힘이 제일 중요했고, 방송 하나를 잘 만들려고 해도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였다. 학교 울타리 밖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 항상 고민하고 생각하자고, 그게 대학생이고 언론인이고 청년이라고 우리는 많이 말했다. 그럴 때 느껴지는 뭔가 뜨겁고 울컥하는 느낌이 그냥 좋았다. 그래서 비슷한 말들을 참 많이도 하고 다녔는데... 아마 철이한테는 더 많이 했을 것이다.


그랬던 사람들, 양심적이고 따뜻한 사람들이구나 싶어서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기로부터 거리를 둔다고 느꼈을 때 철이의 기분은 어땠을까. 친구가 필요하니 후배한테 말을 놓아달라 하고 이름을 부르라 할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마음을 헤아려볼 때면 나는 지금도 괴롭다.


그 이후로 쉽게 결심을 하거나 약속을 하지 않는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사겠답시고 책임이나 믿음을 운운하는 말버릇은 버렸다. 더 좋은 사람이 못 될 거 같으면 덜 부끄러운 사람이라도 돼야지 싶었다. 그리고 정철이의 죽음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약속했다. 부끄럽게 살지 말자고. 정철이의 죽음은 그렇게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다짐이 되어 남았다. 우리가 그 정도 경계하고 깨어있는 만큼 정철이는 우리들 마음 어딘가 살아있을 것이다.


철아. 너를 위해 이런 글이나 쓰면서 한 번 더 울어주는 것만으로 너에 대한 미안함을 내가 어떻게 덜 수 있겠니. 철아. 걷다가 문득 네 이름을 불러보고 그 이름이 닿을 곳이 없음을 느낄 때, 나는 새삼스럽게 네 빈자리를 깨닫는다. 벌써 네가 죽은 지 2년이 지났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들한테 네가 있는 추모공원을 찾아가자 했어. 다들 나처럼 미안한 마음인지 갑작스런 말에도 따라 나서는구나. 작년에는 네 덕분에 모처럼 사람들 모여서 낮부터 술을 걸게 마셨다. 준경이가 그랬지. 그래도 정철이형 덕에 우리 이렇게 오랜만에 모이고 좋네요. 이번에도 그렇게, 일요일에 갈게.










정철이가 무대에 오른 수습회원 작품 발표회. 정철이는 목소리가 참 좋았다. 2004년 겨울.



우리집으로 갔던 합숙. 이 때 참 재미있었다. 정철이가 원선이를 업고 있다. 2005년 겨울.



아마 2006년에 방송제 한다고 부서끼리 사진찍을 때였던 것 같다. 아나운서부 아이들.



2006년에. 학교에서 뭐 한다고 학관 앞에 앉아있다가 찍은 사진. 정철이는 늘 이렇게 엷게 웃었다.



생일이 지난 몇일 뒤 정철이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살아있었다면 우리가 널 7월에 만나지 않고 6월에 만났을텐데... 



악기 연주 뿐 아니라 정철이는 음악 자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정철이가 직접 작곡해서 유튜브에 올린 피아노 연주곡이다. 작곡, 연주 모두 혼자 해서 올렸다. 짧은 연주곡을 들으며 다시 정철이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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