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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을 걷다 ]/깨어있기

나무를 바라보는 동물의 오후

낮은 바다 2015. 9. 26. 23:22

 

정글같은 느낌의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심지어 아마존이 있다.

 

 

추석에 누나 집에 내려가 마당 한켠에 자리를 펴고 뒹굴거렸다. 볕 좋고 바람 시원한 오후였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많아서 모로 누워 한참 그 나무들을 바라봤다. 비슷비슷한 이파리들을 수백 개쯤 틔운 몸으로 여전히 하늘을 향해 맹렬히 뻗어가는 그 생명의 기세에 질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조금 경이로운 생각이 들었다. 저이가 뿌리내린 작은 토양에서 약간의 양분 공급만으로 저렇게 거대한 생명체가 운영될 수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나무 마디마디를 가만히 살펴보는 와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생명활동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종의 ‘반복'이었다. DNA에 각인된 매뉴얼에 따라 특정한 온도와 수분이 주어지면 똑같은 생산을 반복하는 것이다. 개별 이파리들은 각자의 새로운 가치를 갖는다기보다 나무가 자신이 가진 매뉴얼을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주한 것에 불과했다. 똑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해도 매번 약간씩 맛이 달라지듯이.

 

우리 인간종의 삶이 저 나무의 삶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똑같은 생명이니 어차피 똑같은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걸까. 우리들도 우리 어딘가 각인된 DNA의 매뉴얼에 따라 이성에게 성욕을 느끼고 그것을 운명이라 착각하며 안전한 번식과 재생산을 위해 설계된 결혼이라는 제도를 향해 움직여가는. 그렇게 번식을 끝마치고 나면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협하지 않는 가장 보수적인 조건을 따라 웅크러드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로병사의 본질일까.

 

저 사람은 생각을 하고 사나 싶을 정도로 매번 비슷한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반복적인 상처를 주는 어른들이 있다. 비슷한 행동양식이 프로그래밍된 기계처럼 그는 매일 같은 꼰대질을 반복한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새 자본의 속성을 따라 무리한 정복과 확장을 행동 매뉴얼에 추가한 것뿐이다. 그를 두고 유전자적 차원의 생물체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직장에서 자기 노동에 아무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가족들 건사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반복하는 많은 가장들도 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희생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많은 서사들은 오늘도 주인공 직업이나 시대 배경만 살짝 바꿔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가족을 건사하겠다는 그 동기는 결국 자기와 비슷한 유전자를 지속시키겠다는 흔한 생명활동의 동기와 별다르지 않다. 내게는 이런 삶이 나무가 잎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이 다른 동식물에 비해 더 낫다거나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건 무엇 때문일까. 

 

여기 지구라는 작고 푸른 점 안에 바글거리는 수많은 동식물 중 하나일 뿐인 내가 이런 질문을 갖는 것 자체가 어쩌면 과욕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자기 존재에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고 믿는, 우연찮게 높은 지능을 갖도록 진화한 인간종이 자기 몸뚱아리에 부여하는 과도한 자의식. 그 무거운 자의식 때문에 들판의 잡풀이나 초원의 얼룩말에 비해 괜히 피곤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 우리 종의 생멸은 아닌가.

 

나무를 보면서 생각을 거듭했지만. 유전자적 차원의 삶 말고 뭐라도 좀 더 멋진 존재가 되는 방법은, 생각컨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는 느꼈다. 저 나무는 따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연결되어 살아있다. 햇볕과 바람과 이어져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들이 그를 통해 토양이나 벌레들 사이를 오가며 인간을 이롭게 하기도 한다. 이 세계에 적은 에너지가 도착하는 추운 계절에는 모든 생명활동을 중단하여 땅을 아끼고, 그늘을 만들어 습기를 보존하고 제 주변 미생물들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런 관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때 나는 유전자 운운하는 과학적인 세계관의 범위를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작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갈 무언가들의 행동이나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자연계의 일개 생물로서 나와 연결된 다른 생명들의 몫을 빼앗지 않으면서, 내가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내 의식성과 지능을 사용하는 것. 아마 신이 있다면 원래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 모든 사물들을 밀접하게 이어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조화는 조금 멋지게 느껴진다.

 

 

 

이 마당에서 크는 나무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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