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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일기 ④ 네 번째 계절을 지나는 중

낮은 바다 2015. 12. 20. 21:11


작업실에 들어온 것이 올해 봄의 일이었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이제 가장 추운 겨울에 와 있다. 네 계절 동안 작업실에 얽힌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그 동안 나는 새로운 친구라도 사귄 것처럼 '작업실'을 다루고 돌보는 노하우들을 얻었다. 볕이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인지부터, 보일러 온도는 몇 도에 맞춰놓아야 있을 만한지, 잡벌레들의 출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에어컨 청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같은 사소한 일들까지.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책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해야할 일과 생각해야 할 것이 몇 가지씩 늘어났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나서 몇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작업실은 춥다. 바깥을 향해 난 창과 거실 사이에 베란다가 있어서 방풍과 보온을 해주는 나의 집과 달리, 이 곳은 바깥을 향해 바로 창문이 나 있어서 종종 겨울바람이 비집고 들어온다. 따뜻한 곳에서 잠시 쉬어가겠다는 듯. 그래서 영하를 오가는 날 작업실에 앉아있을 때면, 따뜻한 코코아를 끓여 홀짝이면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이런 글을 쓴다. 보일러는 손이 안 시릴 정도로만 틀고. 가스비 많이 나오니까. 


그렇게 앉아 있었던 지난 주말에,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저건 뭐지? 싶은 장면을 보았다. 





은은한 햇볕이, 오후에, 동쪽으로 난 창으로부터 새어 들어와 책더미 위에 슬며시 내려앉아 있었다. 이런 기분은 뭐랄까. 귀한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가 되찾은 느낌이랄까. 


지난 봄에서 가을에 이르는 사이 서쪽으로 난 현관문을 열어두면 황금빛 양탄자처럼 오후의 햇볕이 밀려들어와 깔리곤 했다. 그 빛깔은 내 마음 속 어떤 기억들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아련하고 몽글몽글한 옛 추억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 잠시 멍해지기도 하고, 어느 해 따뜻한 오후에 그 빛깔이 얼굴에 비쳐있던 채로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의 모습이 설핏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추워지고 문을 열 수 없게 되면서 그런 마법 같은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아침해가 눈부신 볕을 쏟아놓고 감쪽 같이 사라진 오후 4시, 한 겨울 동쪽의 창가에 다시 해가 들 수 있었을까. 하루에 아침이 두 번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늦은 오후의 반가운 방문객은 도대체 누가 보냈나. 사라지기 전에 감사인사라도 하고 싶어 담요를 털고 일어나 창 밖을 보았다.





옷 벗은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낡은 아파트가 보였다. 그 동안 잎이 무성한 푸른 언덕 너머에서 보였던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었다. 모든 인공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산중에 방을 마련한 나로서는 저 녀석이 항상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누릴 하늘을 손바닥만큼 앗아간 도둑. 그렇게 세 계절 동안 미움을 받았던 그가 제 몸으로 한 움큼 오후의 햇볕을 비춰주고 있었던 것이다. 한겨울에 이르러 도착한 선물이었다.


이렇게 작업실에서 네 번째 계절을 지나고 있다.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올 즈음이면 내가 이제는 이 공간에 대해 모든 걸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계절이 한 번 돌면 누구나 한 살의 나이를 먹고 조금은 다른 모습이 된다. 그렇게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는 두 존재가 일주일에 이삼일을 같이 보낸다면 서로 아웅다웅하며 익숙해지는 동안 조금씩 닮지 않을까. 나는 이 공간을 닮아 좀 더 느리고 고요한 사람으로 낡아가고 싶다.












방송이 크리스마스 이브날 잡혀서

오늘 출근해야 할 것 같은데

가기 싫어서 뒹굴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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