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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보낸 마지막 3일 본문

■ [ 일상을 걷다 ]/깨어있기

산사에서 보낸 마지막 3일

낮은 바다 2015. 12. 31. 23:08


전북 김제의 모악산중에 위치한 산사에 도착하니 이미 산 구비구비 깊은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캄캄한 길을 걸어 숙소를 향해 가고 있자니 피로가 밀려왔다.


여기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는 사람의 발길이 없는 곳을 찾고 싶어서 무주의 해발 1000미터 산중에 있는 절에 템플스테이 예약을 했다. 그런데 내가 무주 터미널에 내릴쯤 그 절의 담당자가 문자를 하나 보내 왔다. 시설이 수리 중이어서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날벼락 같은 얘기였다. 올해의 마지막 3일을 조용한 사찰에서 정리하고 싶어 먼 길을 내려왔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연신 미안해하는 그에게 주변의 다른 절을 알아봐줄 수 없냐고 물었고, 결국 이런저런 우연 끝에 모악산의 금산사로 오게 된 것이다.





그날 저녁에 스님과 독대하여 차담을 하고 잠들었다. 산중의 시간으로는 늦은 시간이지만 도시의 시간으로는 한창 활동할 시간이었다. 피로 때문에 금새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와종 소리가 어슴하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로 파고들었다. 둔중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일별하자니 잠이 덜깬 정신으로도 내가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음이 느껴졌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영하의 경내로 나섰다. 입김이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노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무릎을 꿇고 예불을 했다. 알 수 없는 음들이 대적광전을 채우는데 목탁 소리와 어우러지는 스님의 낮은 목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정돈해 준다. 오랜만에 절을 하는데 몸을 땅바닥에 가장 낮게 낮추고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는 순간, 불현듯 탐-진-치[각주:1]로 가득했던 올 한해 나의 모습이 의식에 흘러간다. 나를 낮추고 세상을 높이는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나를 내세우느라 피로하기만 했던 1년이었다.


예불이 끝나고 채 해가 뜨기도 전에 아침 공양을 하러 갔다. 보살님들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산사의 음식들을 먹는데 아침부터 입맛이 돌았다. 버섯, 두부, 상추 등 특별한 재료들을 쓰지 않은 찬들이었지만 서울에서 사먹던 어떤 음식들보다 깊은 만족감을 주는 느낌이었다. 수행차 와서 일부러 고마운 마음으로 천천이 씹어 하나하나를 자각하며 넘겨서 그런지 모른다. 많이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렀다.



첫날은 적멸보궁에서, 둘째날은 이곳 나한전에서 108배를 했다. 나한전은 집착의 괴로움을 내려놓고 열반의 경지에 이른 나한을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나한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108배를 하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산사에 온다면 두 번 108배를 하고 싶었다. 한 번은 속세의 108개의 번뇌를 석가모니 앞에 내려놓는 의식으로. 한 번은 다가오는 새해에 새로운 삶의 태도들을 한 배 한 배마다 다짐하면서. 때 마침 염주를 만드는 곳이 있어서 줄과 알들을 가져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에서 108배를 했다. 한 배를 하고 한 알을 꿴다. 한 배 마다 하나의 번뇌를 내려놓고 줄로 꿰었다. 허리가 저릿할 때쯤 염주가 완성됐다. 108개의 알이 꿰인 이 염주는 나의 번뇌를 묶어놓은 두름이다. 번뇌를 버리고 살 수는 없다. 번뇌와 함께하되 내가 그것을 다스릴 수 있음을 이 염주를 보고 생각할 것이다.


볕 좋은 오후에 잠시 전주 시내에 나가 좋은 과일들을 골라 사왔다. 공양간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시주하고 싶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무겁게 들고 한참을 걸어 공양간에 갔더니 아직 저녁 준비가 시작이 안돼 사람이 없었다. 처음 들어오는 사람이 발견할 수 있게 적당한 곳에 내려놓고 갔다. 몇 시간 후 저녁 공양을 하러 갔더니 시주한 배가 곱게 깎여 놓여있었다. 시원하고 달콤했다. 나물에는 내가 놓고갔던 과일들이 채로 썰려 같이 버무려졌는데 감칠맛을 더해줬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내가 이틀간 묵었던 별채



이곳은 오후 9시면 모든 사람들이 잠든다. 이미 해가 지고 두 시간이 지난, 깊은 밤의 시작이다. 새벽 4시에 예불을 시작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그때가 밤의 끝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이 흘러간다.


이 적막한 산사에서 하루만 생활해도 도시의 생활이 낯설어 보인다. 도시라는 공간은 생산과 소비를 늘리기 위해 인간의 활동시간을 인위적으로 밤까지 연장시킨 곳이다. 화려한 불빛과 자극적인 음식들, 술과 커피,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문물들이 저마다 말초신경을 자극해 의식을 각성시킨다. 자연스럽게 몸과 정신은 소진되고 주말 잠깐의 휴식으로도 회복은 쉽지 않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태어난 생명체인 인간은 자본주의적 필요에 따라 조직된 도시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탈진한다. 산사에 와서 다시 자연의 흐름 속에 들어와 있으니 그간 지내온 내 생활의 불균형과 어긋남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곳을 찾으며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때를 가장 기다렸다. 인상 좋고 덩치가 큰 스님은 연신 염주를 굴리며 유쾌하게 말을 이었다. 속세에서 30여년을 살며 온갖 희노애락을 경험하다 출가한 승려에게 허심탄회하게 내 생각들을 털어놓고 있자니 그간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문제의 무게는 문제를 안고 있으면 점점 커진다.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문제와 무관한 다른 즐거운 활동이 나의 시간을 더 많이 채우게 해야 한다. 그러다 돌아오면 별 것 아닌 자그마한 일이 되어있을 수 있다. 문제의 무게란 삶의 다른 관심거리들에 비해 상대적인 것이므로 그렇게 작아질 수도 있다. 그럴 땐 연애를 하세요. 명상을 하세요. 스님이 툭 던진 말의 의미가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 이모저모로 나를 깨워놓고 다시 삶 속으로 돌아간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산중의 사찰이든 기도원이든, 도시 문명의 사람들에게 휴식과 성찰의 기회를 주는 종교적 공간, 종교적 시간은 뜻깊다. 산사를 닮아 한결 고요해진 마음으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렇게 나의 한 해가 끝났다.













  1.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三毒). 삶이 고통스러운 원인으로 본다. 탐은 탐하는 마음, 진은 성내는 마음, 치는 자기만 생각하여 사리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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