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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일기 ② 창문과 벽과 사물들의 색깔

낮은 바다 2015. 7. 13. 07:00


작업실 소식


이제 작업실을 마련한지 세 달 정도가 지났다. 기본적으로 책이나 노트, 노트북, 혹은 가구 같은 것을 갖다 놓는 일은 봄이 다 지나기 전에 마무리했다.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이곳을 내가 보기에 충분히 멋지다 싶게 꾸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지금은 구상한 것 가운데 무모하다 싶은 일부를 빼고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었다. 





커튼을 두 번 정도 바꿨다. 원래의 녹색 커튼은 뒷 배경에 보이는 산하고 느낌이 비슷하고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라 선택했는데, 녹색-연두색 안에도 수많은 컬러들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채도가 낮으니 약간 후진 느낌이 들었고 비슷한 색들이 연이어 보이는 것도 멋지지 않았다. 그냥 둘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 달쯤 전인가, 그 커튼을 걷고 약간 진한 파란색 커튼을 다시 걸었다. 





영원한 내 소유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기 어렵다. 내 집이라 해도 이 오밀조밀하게 사람들이 들어서 있는 건물에서 주말에 못 박는 소리를 내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조용한 곳에서는 발소리도 조심스럽게 살자는 게 내 주거지 철학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액자를 벽에 거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벽에 못을 박지 않고 무언가를 걸거나 붙이는 다양한 도구들을 발견했다. 궁즉통이라. 이런 도구들은 따로 소개하고 싶을 만큼 멋지고 실용적이다. (비슷한 물건을 찾는 분은 댓글로...) 






모든 물건을 새로 사는 건 짜릿한 일이긴 하나 건강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사진에 보이는 대부분의 사물들... 오디오 스피커와, 하얀 의자와, 책장과, 심지어 책들 대부분까지도... 이리 저리 다른 누군가에게 쓰임을 다한 것들을 사온 것이다. 어떤 것은 놀랄 만큼 저렴한 가격이었다. 4월에 이런 것들을 찾아 돌아다니느라 퇴근 후에 애를 좀 썼지만 이 물건들이 여기 모이게 된 사연들이 각자 독특하니 좀 더 애착이 간다.


처음부터 작업실을 딱 이 모양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해왔던 시행착오로 여기까지 했다. 미적(美的)으로 아름답다 싶은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보는 일을 한 것이 언제였던가. 예전에 연애했던 친구한테 주었던 그림엽서 정도가 마지막 아니었을까. 그게 생활이든 정치든 마음에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것을 스스로 손발을 움직여 만들어가는 것은 가치있는 일인 것 같다. 작업실이 생김으로써 내게 소소하나마 그런 기회가 하나 주어졌던 것이다.

 


비오는 날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는 어제 밤 늦게부터 비가 내렸다. 폭염이 내려앉은 아스팔트 도시를 촉촉히 적시며 식혀주는 빗줄기가 시원스럽다. 작업실에서는 창 밖으로 관악산 한 쪽 사면의 나무들이 보인다. 지척에도 있고 멀리도 있다. 내 시야에서 인간이 인공으로 만든 무언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어젯밤부터 나무와 흙이 비를 맞으며 흘려 보내는 여름날 산냄새를 맡고 있다. 


나무가 틔워올린 녹색 잎들이 빗방울을 머금는 풍경을 보면서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무렇게나 눕거나 기대서 조용하게 새소리 바람소리를 음악삼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오늘은 빗소리도 있고 비냄새도 흘러들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 꽤나 자족적으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동네에서 이틀 정도 침묵수행을 하다보면 뭔가 한 구석이 허전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에 보면 주인공 스필만의 가족들이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에 작은 카라멜 한 조각을 나눠먹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들 주머니를 털어 모인 20즐로티로 바꾼 그 카라멜을 늙은 아버지가 작은 스위스칼을 들어 작게 작게 나눈다. 손톱보다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나눠 말없이 먹는 가족들... 스산한 풍경이지만 문득 사람들이 모여서 혈연을 만들고 그렇게 기대어 있다는 것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런 시작을 함께할 만한 딱 한 사람을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구체적인 관계 안에서 직접적으로 사랑받고 싶은 열망은 아무리 어른이 돼도 희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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