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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일기 ③ 냉장고와 요섹남

낮은 바다 2015. 10. 24. 22:24


정오까지 뒹굴거릴 수 있게 해 주는 햇볕 차폐율 99%의 고성능 커튼



달콤한 3일 휴가


이번 주는 시작부터 평소보다 더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주 야심차게 실험적으로 만들었던 방송이 기대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그런 실험조차 무가치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더 기력이 빠져나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반짝 힘이 됐던 거라면 화요일 저녁 폴댄스를 갔다가 내가 사뿐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는 것 정도? 이 무거운 몸뚱아리때문에 매번 번뇌하다가 네 번째만에 두 손으로 봉을 잡고 몇 바퀴 우아하게(?) 돌았다. 내색 안 하고 쿨한척 했지만 실은 굉장히 기뻤다. 천사같이 예쁜 쌤이 박수치며 좋아할 때는 (약간) 우쭐하기도 했다.


그랬든 말든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출근을 해야 했고 이래저래 심란한 일들이 이어졌다. 사람 때문에, 일 때문에 어지러운 시간들. 사람은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으니 일이라도 치워버리자 싶어서 그동안 잡고 있던 몇 가지 일들을 쿨하게 정리해버렸다. 욕심이 많아 질질 붙잡고 있던 일들을 몇 개 정리하니 마음이 꽤 가벼워졌다. 그래서 업무시간에 풍선처럼 둥둥 날아가 광화문 근방을 배회하면서 책 좀 사고 차 마시고 느지막이 회사로 들어왔다. 기자일이라는 게 이럴 땐 좋다. 나는 아이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금요일이 왔지만 여전히 회사는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팀장님께 아침 문자 한통 날리고 쉬었다. 금토일 황금 같은 3일의 휴가! 이럴 때 관악산 중턱의 고요한 언덕에 자리한 나의 작업실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가.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금요일 정오까지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상상을 하며 뒹굴거렸다. 뭔가 고소함이 느껴졌다. 창문을 살짝 열어 놓으니 새소리 바람소리가 흘러들어와 내가 비로소 완전한 휴식의 공간에 와 있음을 일깨워줬다.


냉장고와 요섹남


한동안 요섹남이 인기래서 요리를 좀 해볼까 하고 냉장고에 이런 저런 재료들을 쟁여놨었다. 그러다 혼자 연습삼아 그럴 듯한 음식도 해먹었는데 딱 두 번 이었다. 요리를 해도 같이 나눌 사람이 없으니 만들어 먹고 치우고 하는 수고를 감수할 동기가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 한달 정도는 바쁘기도 해서 작업실에 여유있게 머물러 있지도 못했는데, 그러다보니 몇 가지 채소나 밑반찬들이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걸 치워야지 마음만 먹다가 모처럼 찾아온 여유있는 금요일 오후에 냉장고 청소를 했다. 혐오스럽게 퍼진 오이와 반쯤은 액체화된 양상추를 무슨 독극물다루듯 조심조심 집어들어 치우고, ‘김치 치즈 파스타'를 하려고 집에서 공수해 왔던 김치도 너무 쉰내가 나서 국물을 짜서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렸다. 많지는 않았던 터라 청소는 30분만에 간단하게 끝났다. 그리고 다시 오랜만에 냉장고 코드를 뽑아버렸다. 


아… 이 고요함. 

작업실의 유일한 소음원이었던 냉장고가 침묵하니 세상이 평화롭다.



청소 완료 냉장고!



사실 처음에 작업실에 들어왔을 때는 음악을 듣기 위한 오디오 앰프를 제외하곤 전기를 사용하는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안 쓰고 지내볼 작정이었다. 불편함이 사람을 깨어있게 한다는 생각에 작업실 이름까지 ‘불편당'이라고 떡 하니 지어놓았고 작업실에 머무는 한은 아주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볼 참이었다.


그런데 스멀스멀 욕심이 일어 문명의 이기들을 들여놓다보니 작업실을 연지 한달 만에 6구 멀티탭을 두 개나 주렁주렁 이어놓게 됐다. 에어콘, 프로젝터, 인터넷 공유기, 카메라, 노트북, 오디오 앰프 등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다 요리를 마음 먹고 냉장고 전원까지 넣고 나니 마누라만 있으면 완벽할 살림집이 된 것이다. 얼마 전 이 방에 놀러온 선배가 내가 불편당이라고 이름붙여놓은 거를 보고 조소했는데 나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이런 도구들과 함께하게 된 결과 작업실에서 내 시간은 더 풍요로워졌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느 매력적인 여자 못지 않게 고가의 프로젝터와 최신형 맥북과 DSLR 카메라가 나를 유혹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런 도구들과 벗하며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내가 원래 하려던, 책 읽고 사색하고 글 쓰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제 내가 도구들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나를 부려 자기 존재감을 과시한다.


안 그래도 스마트폰의 노예로 살아온 터라 이런 노예질을 그만하려 각오를 다졌었는데. 그래서 일주일에 이틀이나마 문명에서 나를 격리하려고 산중에 터를 마련하고 구태여 ‘불편당'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가. 허나 문명인의 관성이란 중력과도 같은 것이어서 산중으로 도피해서도 피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쨌든 오늘 냉장고 전원을 뽑으면서 요섹남까지 되려는 가당찮은 욕심과 때맞춰 시원한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긴요한 쾌락은 포기했다. 이 정도면 대단한 결단은 아니지만 약간의 변명거리로는 삼을 수 있지 않을까나.



이런 걸 붙여놓고는 아주 편하게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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