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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걷다
작업실에 들어온 것이 올해 봄의 일이었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이제 가장 추운 겨울에 와 있다. 네 계절 동안 작업실에 얽힌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그 동안 나는 새로운 친구라도 사귄 것처럼 '작업실'을 다루고 돌보는 노하우들을 얻었다. 볕이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인지부터, 보일러 온도는 몇 도에 맞춰놓아야 있을 만한지, 잡벌레들의 출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에어컨 청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같은 사소한 일들까지.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책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해야할 일과 생각해야 할 것이 몇 가지씩 늘어났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나서 몇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작업실은 춥다. 바깥을 향해 난 창과 거실 사이에 베란다가 있어서 방풍과 보온을 해주는 나의 집과 달리, 이..
일곱 살쯤 먹었을 때였나. 유치원에서 학예회를 하던 날이었다.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한테 하얀 면티와 하얀 바지를 맞춰 입고 오라고 얘기를 했다. 그날 유치원에 가니 모든 애들이 하얗게 옷을 맞춰 입고 왔는데, 나만 깜빡 잊고 노란 티에 파란 반바지를 입고 갔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혼자 다른 복장에 당혹스러웠던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비슷한 일들이 학창 시절 내내 이어졌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담임선생님이 학생증에 들어갈 증명사진을 가져오라고 여러 차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만 마지막 날까지 흘려듣고서는 당일날 아침에 부랴부랴 준비한다는 것이, 웃기게도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있는 사진을 가위로 오려갔다. 그 종이 쪼가리를 들고 선생님이 얼마나 어이없어 했는지. 어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