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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 5일장 @ 젊은이들이 바꾼 재미있는 시골장터 본문

■ [ 일상을 걷다 ]/일상의 여행

봉평 5일장 @ 젊은이들이 바꾼 재미있는 시골장터

낮은 바다 2015. 7. 8. 02:34

 

6월 어느날에 갔던 봉평장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평창에 갔다가 우연히 봉평장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이곳에 왔다. 아무 계획도 없이 온 여행에서 이런 걸 발견하면 횡재한 기분. 2일, 7일마다 열리는 5일장인데 운 좋게 내가 갔던 날에 장이 열린 것이다. 

 

장터의 들머리 쯤에서 뭔가 신기한 걸 발견했다. 장터의 소식지가 있었다. 장터 스탬프와 장터 로고, 곳곳의 예쁜 간판들까지... 젊은이들의 심상찮은 실력이 느껴졌다. 누가 여기에 와서 이런 마법을 부려놓고 갔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검색하지 않았다. 일단은 경험.

 

 

 

 

 

가게마다 다니면서 이렇게 봉평장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손바닥에 찍든 이마에 찍든 엉덩이에 찍든 자기 멋대로 하면 됨. 이런 걸 보면서 맛집의 비결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이 바글대는 음식점의 비결은 과연 맛있는 음식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가게에 갔을 때 뭔가 '특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전채로 라면을 후식으로 치즈케잌을 주는 분식집이라든가, 전직 피트니스 코치가 나시티를 입고 커피를 만드는 카페라든가, 가게를 목욕탕처럼 꾸며놓고 직원들 머리에 양머리 수건을 올려놓은 고깃집이라든가...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곳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사람들이 어떤 가게를 먼길 마다않고 찾아가는 이유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봉평장은 멀리 찾아가도 좋을 만한 몇 가지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그냥 만든 음식이라도 브랜드가 있으면 뭔가 달라보인다. 봉평장에서 파는 대부분의 제품에 이렇게 봉평장의 마크가 붙어있다. 뭔가 그냥 아무데서나 파는 절편과 찰떡을 사먹은 게 아니라, "봉평장"에서 파는, 봉평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떡을 사 먹은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점포마다 이렇게 작은 간판이 붙어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이지 않을까?) 스튜디오에서 잘 찍은 말끔한 사진과 이곳에서 파는 음식이나 물건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들이 적혀있다. 여기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주환이네>는 

 

쉿! 양념은 비밀. 쌀 떡볶이는 진실!

 

이라며 너스레를 떨고. 그냥 잡곡을 파는 가게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이 잇는 50년 전통의 잡곡 전문점"이라고 가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심히 흘러가던 손님들이 주인장 앞에 멈춰선다. 그리고 잠깐 동안 그가 음식을 만들고 물건들을 정리하는 짧은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남도정든집> 아주머니는 강원도에서 메밀전을 만들어 파시지만 남도가 고향이다. "남도 아주머이 정성과 솜씨로 빚어낸 강원도의 맛"이다. 왜 어쩌다가 이 먼 곳까지 오셔서 자리잡게 됐을까. 잠깐 앉아서 메밀전에 막걸리 한 잔을 하며 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강원도 장터에 와서 메밀전 하나 안 먹어보고 갈 수는 없지 않나. ^^

 

 

 

 

어머님도 여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곳곳에서 나물도 사고 주전부리도 사고, 

충동구매를 하셨다.

 

 

 

 

신대방역 2번출구 쪽으로 내려가면 메추리구이를 파는 포장마차들이 있다. 대학 3학년 땐가 선배랑 같이 그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 한 잔에 처음 메추리를 먹어봤다. "너 메추리 먹냐?" 선배가 물었는데, 그 때는 사내랍시고 자존심이 있어서 "아 형, 당연하죠."라고 말했다. 곧이어 위 사진처럼 새까맣게 탄 말라비틀어진 벼락맞은 것 같은 메추리들이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이 죄책감은 왜... 때문이죠?... 치킨이나 계란후라이를 먹을 때는 보송보송한 병아리들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메추리를 먹을 때는 지지재재 옹알옹알대는 메추리 새끼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봉평장에 가서 오랜만에 메추리구이를 보았다. (먹지 않았다.) 친히 국내산이라고 본적을 밝히고 귀여운 사진까지 한 켠에 넣어주는 사장님의 부담스러운 센스. 내가 사진을 여러컷 찍고 있으니 홍보 좀 해달라고 넉살 좋게 웃으며 말을 건네신다. 

 

 

 

 

암튼 어느 주말에,

어떻게든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쉬고 싶을 때

봉평장을 찾아가 느릿느릿 걸으며 사람들한테 말도 붙여보고 군것질도 좀 하고

해질녘쯤에 시원한 바람 불어오면 슬슬 메밀밭 끼고 걸어가 이효석 생가 구경도 하고 

이 동네의 여행이란 딱히 여행자의 욕심을 부추기지 않는 슴슴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근처에 몇 군데 더 가볼 곳이 있는데,

 

 

 

 

이효석 문학관.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였다.

태백산맥 문학관이 너무 멋졌던 기억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비교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내용은 별로 없는데 사진 찍고 산책하기 좋은 곳은 많았다. 

우리 서연이는 (항상 그렇긴 하지만) 좋다고 뛰어다녔다. 

누나(=엄마)한테 손 흔드는 중.

 

 

 

 

이효석 문학관에 올라가면

이효석이 살던 야트막한 봉평읍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청태산 자연휴양림.

한두 시간 정도로 힘들지 않게 슬슬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는 길들이 잘 닦여 있다.

애기들이 뛰놀기에도 부담없다. 차가 다니지 않으니까. 

다만 캠핑장 사이로 난 진입로를 찾는데 어려울 수 있는데

지도를 좀 주의 깊게 보고 출발하자.

 

 

 

 

 

 

 

 

 

 

봉평장은 4백여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도 찾던 그 시장이다. 1957년 재정비한 후로도 사람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1970년대 말에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규모도 작아졌다. 그랬던 이 장터를 작년에 모 카드회사의 문화사업팀 젊은이들이 들어와 공공미술 개념을 도입해 바꿔놓은 것이다. 이후 방문객도 늘고 상인도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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