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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을 걷다 ]/깨어있기

혼자서 느리게 걷기

낮은 바다 2015. 6. 8. 01:46


일곱 살쯤 먹었을 때였나. 유치원에서 학예회를 하던 날이었다.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한테 하얀 면티와 하얀 바지를 맞춰 입고 오라고 얘기를 했다. 그날 유치원에 가니 모든 애들이 하얗게 옷을 맞춰 입고 왔는데, 나만 깜빡 잊고 노란 티에 파란 반바지를 입고 갔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혼자 다른 복장에 당혹스러웠던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비슷한 일들이 학창 시절 내내 이어졌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담임선생님이 학생증에 들어갈 증명사진을 가져오라고 여러 차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만 마지막 날까지 흘려듣고서는 당일날 아침에 부랴부랴 준비한다는 것이, 웃기게도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있는 사진을 가위로 오려갔다. 그 종이 쪼가리를 들고 선생님이 얼마나 어이없어 했는지.


어쨌거나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다. 그러고서 대학에 갔는데 연애에 심하게 몰두하다가 성적불량으로 짤렸고, 원치 않는 재수를 거쳐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다. 만성적으로 타이밍이 늦는 인생이 이때 빛을 발했다. 대학 졸업장을 따는데 무려 11년이 걸린 것이다. 11년 걸려서 과수석쯤 했으면 돌대가리를 노력으로 극복한 예라도 되었겠으나 안타깝게도 거의 확실한 꼴찌로 졸업했다. 서른 살에 제대한 군대와 서른셋에 한 취업은 또 어떠한가. 나는 그렇게 늘 몇 걸음씩 늦는 사람이었다.


흔히들 밟아 가는 삶의 단계라는 게 중년이 될 때까지는 갈수록 바빠지고 빡빡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나보다 저만큼 앞서 가는 친구들의 부산스러운 뒷모습을 멀찌감치 뒤에서 바라보곤 했다. 그래도 그 애들이 사회초년생이었던 몇 년 전까지는 우리에게 아주 비-계획적이고 무모한 시간들이 허락되었다. 절친 녀석들이 종종 내가 혼자 다니는 학교 근처에 와서 술 한 잔을 사는 저녁이나, 그러다 욱 해서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 같은 것들. 밤샘, 맥주, 긴 거리를 걸었던 새벽, 기타, 노래, 눈물, 한강변... 그 시절의 삶을 반짝이게 만들어주었던 많은 추억들이 그렇게 남겨졌다.



내가 참 좋아하는 사진. 2013년 경주 여행



하지만 이제 그런 무모함의 때는 지난 것 같다. 모든 것은 잘 계획되어서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젠 겉으로도 나이든 어른들이 되었고 각자의 삶은 복잡하고 세밀하게 짜인 구조물 속으로 들어섰다. 이제 그들을 만나는 일이 군대 간 친구 면회하듯 어렵다. 그만큼의 거리가 우리 사이에 생겼고, 그 안에 양가 부모님과 마누라와 아기와 전세금 대출과 통장 잔고 같은 것들이 들어섰다. 이것은 주변이 좀 더 소중한 것들로 채워지는 과정일까, 아니면 이해도 못한 채로 진도에 맞춰 교과서를 넘기는 범박한 학생의 삶으로의 회귀일까.


산바람이 서늘한 일요일 저녁 작업실 책상에 혼자 앉아있는데 문득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 쓸쓸함이 어떤 청승맞거나 우울한 느낌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쓸쓸하지 않다고 말하는 고집스러운 할아버지처럼 이런 말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 쓸쓸함은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 직업상 불가피하게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정신없는 월화수목금을 보낸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가고 찾아온 주말에 나는 가능한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한다. 그렇게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을 때까지 좀 더 잠겨들고 싶다. 혼자서 느리게 걷는 일은 내게 가장 익숙한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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